나노테크놀로지(Nanotechnology)란?

Posted by ttahha
2010.10.02 03:44 분류없음
                             

나노테크놀로지(Nanotechnology)란?

물체들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특질은 원자들의 배열상태에 의해서 정해진다. 어린 시절 과학 수업시간에 연필심의 원자들을 재구성하면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을 모두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반도체가 모래의 원자들을 재배열함으로써 얻어진다는 사실도 이제는 너무도 구태의연한 상식으로 통한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정보를 무제한 복제 할 수 있다. 컴퓨터가 정보의 비트(bits)를 다루듯이 물체의 원자들을 직접 다룸으로써 거의 드는 비용 없이 제품들을 생산하는 장치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복사기가 원본을 다시 치는 수고 없이 무제한의 복제를 하듯이 전통적인 개념의 인간노동 없이 생산품들을 복제하는 장치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다.

나노(Nano)는 작다는 의미이다. 이 용어는 10-9 m(10억분의 1미터)를 표현하는 단위로 고대 그리스의 난쟁이라는 의미의 nanos에서 유래되었다. 만약에 우리가 야구공을 지구 만한 크기로 확대시키면 원자들은 포도송이 만한 크기로 눈에 띄게 된다. 이 원자들을 세네 개정도 나란히 놓은 것이 나노미터 안에 들어간다. 나노테크놀로지(Nanotechnology)는 광범위하게는 작은 물체들을 연구하고 다루는 분야다. 여기에는 원자, 분자, 단백질을 생산하는 분자기계인 리보솜(ribosome) 등이 대상이 된다. 보다 좁은 의미로 사용될 때는 흔히 분자 제조법(molecular manufacturing)을 의미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물체를 한번에 한 원자씩(혹은 분자씩) 배열해 가는 방법을 일컫는다.

"...가지와 잎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나무들)은 자르거나, 연마하거나, 휘젓거나, 굽거나, 뿌리거나, 새기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분자 전자 장치이자 광합성 작용의 중심인 엽록체를 이용해서 태양 에너지를 모은다. 그들은 그 에너지로 이산화탄소와 물을 산소와 분자 생산 단위로 변화시키는 분자 기계(움직이는 세밀한 분자구조 부분들로 이루어진 활동적인 장치들)들을 조정하는데 사용한다. 그들은 뿌리, 몸통, 가지, 잔가지, 태양 집전체, 그리고 더 많은 분자 기계들을 만들 수 있도록 이들 분자 생산 단위들을 결합하기 위해서 다른 분자 기계들을 이용한다. 모든 나무는 잎을 만들며 그 잎들은 우주 비행체보다 정밀하고 실리콘밸리의 첨단 칩보다 세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소음, 열, 악취 또는 인간노동 없이 하고, 또 그 과정에서 오염 물질을 소비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무는 고급 기술이다. 반도체나 로케트는 그렇지 못하다."- Unbounding the Future, Chapter 1, K.E. Drexler and C. Peterson -

나무들은 나노테크놀로지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암시를 준다. 나노테크놀로지는 기본적으로 여러 학문들의 결합의 장이다. 대체적인 개념들은 생물학에서 시작되었다. 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듯이 소음도, 공해도, 많은 에너지 소비도 없이 스스로 복제하고 진화해 나가는 기계들이 생물학의 영역에는 이미 존재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장치를 만드는데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가늠하는 것은 물리학, 기계공학적 원리들이다. 분자구조들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화학의 역할도 물론 클 것이다. 이렇게 분자들의 관계를 연구하는 나노미터 크기로의 이동은 결과적으로 생물학적인 영역과 무생물적인 영역 사이의 구분을 흐려놓았다. 또한 정통 물리학과 양자 역학 사이의 구분도 무너지기 시작한다.

원자론(Atomism)의 재인식

원자(atoms)는 현대에 발견된 개념은 아니다. 이미 그리스 당시의 철학자들은 이 세상의 근원적인 실상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모습들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서로 다른 해답들이 나왔다. 일부에서는 모든 것은 변화라고 여겼고 다른 사람들은 변화란 허상이라고 생각했다. 피타고라스파(Pitagoreans)들은 만물은 숫자라고 생각하며 자연에 대한 수학적 접근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들의 이상적 접근은 유물론자(materialists)들의 방식 특히 원자론자들과 날카로운 대조를 보였다.

원자론은 기원전 5세기경에 그리스의 철학자인 루시퍼스(Leucippus)와 그의 제자인 데모크리토스(Democritus)에 의해 제안, 발전되었다. 그들에 의하면 물질은 어떤 정해진 한계까지만 분해될 수 있고 그 이상에는 원자들만이 존재한다. 세상은 진공을 떠돌아다니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크기와 모양만이 차이가 있을 뿐이며 서로 다른 물질들은 다른 특성을 지닌 원자들의 모양, 배열과 위치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원자들은 무한한 진공 안에서 다른 원자들과 충돌을 하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각 가능한 세계의 변화들의 저변에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며 변화는 원자들의 결합과 분리에 의해서 생긴다고 믿었다.

이 이론은 일부의 논리적 모순과 이차적 특성들이라고 불리는 색, 맛, 냄새 등의 특질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에 의해서 비판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이론은 근원적으로 질적이었다. 그에게 질(quality)은 물질을 이루는 근원적인 구성요소였으며 목적 없는 자연이라는 원자론자들의 생각에 반대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목적으로 가득 찬 행위자로 만들어 놓았다.

뒤이은 기독교의 세계에서 자연은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산물로 간주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류의 목적과 질서에 대한 인식은 기독교의 인식체계에 훨씬 잘 어울렸다. 게다가 원자론에서는 원자의 단계와 관찰 가능한 현상들 사이에 연결 불가능한 단절이 놓여있다. 그에 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관찰 가능한 현상들을 직접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아리스토텔레스도 물질의 분리 가능성의 이론적 한계성을 나타내는 minima를 가정했었다. 이러한 생각은 면면히 이어져 17세기 기계적 세계관의 기초를 마련했다.

원자론은 전적으로 기계론적이다. 원자들의 움직임은 이성이나 동기, 선 등에 의지하지 않고 설명되어진다. 이는 또한 인과적인 결정론이다. 개별적인 원자들은 그의 움직임에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외부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 원자들의 복합체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들 설명들은 「위에서 아래로」가 아닌 「아래서 위로」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원자들의 복합체의 움직임과 속성은 복합체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들의 개별적인 움직임의 합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왜 나무나 동물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설명을 각 구성 원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설명함으로써 이해되는 것이다. 굳이 원자론을 거론하는 이유는 그 이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모든 것을 개념에서 시작해서 물질화해 나가는 편중된 사고들, 정신과 물질을 이원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한 대안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래에서 위로 가는 방법을 심각하게 찾아야 할 때가 왔다. 목적 없는 자연으로 다시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립자(Assemblers), 나노컴퓨터 그리고 해체자(Disassemblers)

우리가 어떠한 범위의 개념을 사용하든 기본적으로 나노테크놀로지는 원자단위의 정밀한 특성을 특징으로 가질 것이다. 이 기술에 의해서 제조되는 어떠한 물건이든 원자를 정확히 배열하는 것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노테크놀로지는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에 따르는 어떠한 구조도 정확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기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들은 들어간 원재료와 에너지 이상으로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특성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정확한 위치조정 기술자기복제(self replication) 능력을 필요로 한다. 에릭 드렉슬러(Eric Drexler)에 의해서 처음 제안된 일반 분자 조립자(universal molecular assembler)가 이에 대한 해답을 처음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조립자(assembler)는 분자조정 팔(molecular manipulator arm)과 나노컴퓨터(nanocomputer)로 이루어져 있다.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나노컴퓨터가 지시사항들을 읽고 조정 팔을 작동해서 필요한 원자들을 순서대로 배열시킨다. 이들 원자들을 결합시키는데 있어서는 종래의 화학적 합성과는 달리 필요에 따라서 조립자가 적절한 에너지를 제공함으로써 기계적 합성(mechanosynthesis)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적절한 프로그래밍에 의해서 조립자는 스스로의 복제가 가능해진다. 결국 이 조그마한 조립자들은 필요한 수만큼의 자신을 먼저 복제하고 보다 상위의 지시에 따라서 원자들을 배열해 가면서 물건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이 접근 방법의 가능성은 리보솜(ribosome)의 예에서 볼 수 있다. Messenger(전달자) RNA의 형태에 암호화되어 있는 지시사항들에 응해서 리보솜은 개별적인 아미노산들을 차례대로 집어서 자라는 단백질 구조에 접합시키는 형태로 지구상의 모든 단백질을 생산한다. 하지만 조립자(assembler)는 그보다는 더 진보된 형태로 산업 로봇 팔과 같은 삼차원의 정확한 위치조정을 통해서 복잡한 분자구조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또한 조립자는 단백질보다 강하고 안정된 구조를 바탕으로 여러 다양한 종류의 화학결합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리보솜이 그 활동을 조정하기 위해서 mRNA를 필요로 하듯이 조립자도 세밀한 연속 조정신호를 필요로 한다. 이 역할을 나노컴퓨터가 할 것이다. 이 컴퓨터는 그 크기상 전자적인 원리의 사용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맞닿는 부분(locks)에서 서로 막고 여는 상호작용을 하는 이동하는 막대를 이용하는 기계적 원리를 이용함으로써 오히려 19세기에 황동 기어들로 만들어진 Babbage의 기계적 계산기를 닮고 있다. 다만 그 크기가 나노미터의 단위로 작아졌을 뿐이다. 비록 기계적 신호가 전자 신호에 비해 100,000배 느리지만 1/1,000,000배 적게 움직여도 됨으로써 훨씬 빠르고 작은 컴퓨터를 만든다.

조립자(assembler)는 물건을 결합해 나가는데 사용될 것이다. 그들의 변종인 해체자(disassembler)는 물체를 분석하고 분해하는데 사용될 것이다. 이 경우에 해체자는 효소나 화학반응의 결합을 끊는 성격을 이용한 것이다. 위의 해체자(disassembler), 조립자(assembler) 그리고 나노컴퓨터는 기존물질의 분석, 분해에서 새로운 물건들의 생산에 이르기까지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용된다.

위에서 아래로(Top-down) / 아래서 위로(Bottom-up)

현재의 우리가 지니고 있는 테크놀로지의 대부분은 「위에서 아래로(Top-down)」혹은 형태 만들어가기(bulk-shaping)의 변형들에 속한다. 대략적으로 원자재는 광산이나 삼림 등지에서 비싼 비용으로 채취되어 제련소나 가공공정 또는 다른 과정을 거쳐서 공장들에서 최종적인 생산품들을 만들어낸다. 각 단계에서 재료는 정화되고 잘라지고 제련되는 등의 과정을 거쳐서 더욱더 세심하게 다루어진다. 대체적으로 각 단계에 들어가는 비용은 증가가 되고 부산물로써 환경오염을 야기 시킨다. 현대에 와서는 물건을 소형화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더더구나 전자제품들과 그에 따르는 부품들의 발전 속도와 작아지는 속도는 더욱 놀랄만하다. 하지만 이 기술을 나노테크놀로지라고 일컫기를 사람들은 주저한다. 이는 그들 사이에 놓여있는 기술의 차이 이상으로 철학적 의미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위에서 아래로(Top-down)」의 방식은 큰 기계들을 사용해서 그 작아지는 구조들을 여전히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충분한 제어를 하면서 계속적으로 작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돌을 쪼개서 연장을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의 소형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에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물질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가공해 나간다는 방법상의 개념에는 변화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목적론적인 사고의 근간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크기가 작아질수록 비용이 높아지고 조만간 그 재료들과 기술 자체가 지닌 근원적인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반면 나노테크놀로지는 「아래서 위로의(Bottom-up)」방법을 대표한다. 어떤 원하는 물건도 원자 혹은 분자 하나 하나씩 직접적으로 구성해 나감으로써 만들어진다. 재료도 먼 거리에서 모아올 필요도 없이 주변에 있는 아무런 부산물들 그리고 심지어 공기까지도 구성원소들로 분해해서 나노테크놀로지의 조립자(assembler)를 통해 유용한 물건들로 재결합시킬 수 있다. 이 방식은 「위에서 아래로(Top-down)」와는 반대로 정밀하게 제어된 분자 기계들로 시작된다. 문제는 어떻게 그 정밀한 제어를 유지하면서 크게 만들 수 있는가에 놓여있다. 이는 결국 최소단위의 궁극적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 다음은 존재하는 법칙들에 벗어나지 않는 한계 내에서 구조와 배열을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훨씬 더 융통성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나노테크놀로지의 적용

우선 건축과 연계해서 한번 생각해보자. 이는 매크로(macro)에서 마이크로(micro)에 이르기까지 도시들에서 도시, 대지(site), 한 인간의 영역에 이르는 스케일과 이론들 사이의 벽을 넘나들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또한 인간과 그 구성원자에 이르는 개념적 스케일의 자유로운 이동은 우리가 디자인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언제나 전체적인 개념적 틀에서 그에 따른 세부를 디자인해 나가던 방법에도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시공의 기본단위 또는 구조단위의 개발을 바탕으로 여러 단계에 걸친 조립자적인 확대를 통해 (이에는 컴퓨터의 역할이 클 것이다) 건물과 도시를 구성해 나가는 대안적인 건축으로도 이어진다.

이런 예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Richard Buckminster Fuller는 1950-60년대에 유행했던 거대한 돔 구조(geodesic dome)의 설계자였다. 그는 결과적으로 나노테크놀로지의 방식으로 사고했다. 그에게 있어 건축구조는 재료들을 다듬고 연결해서 최종적인 결과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고 역으로 원자들과 분자들이 구조의 에너지 균형을 잡아주는 기본 구성요소였다. 그의 돔 구조는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했으며 그들은 각 점의 최대한의 안정과 최소한의 응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의 생각은 돔 구조에 한정되지 않았고 거대한 도시 구조체(urban structure)를 형성하는 자라나는 거대구조로도 이어진다. 이는 결정체(crystal)와도 같이 전체 구조의 청사진이 그 하위구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우리가 지금껏 언급했던 조립자, 리보솜, DNA 등과 연속선상에 있으며 바이러스의 대칭적 구조와도 유사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에게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이 돔 구조가 신물질의 기본구조로 이용되었다는 것이다. 1985년 화학 분야에서 개발된 Buckminsterfullerene이라고 불리는 60개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 탄소의 구체가 바로 그것이다. 육각형과 오각형으로 이루어진 이 속이 빈 구체의 탄소원자구조는 강도, 안정성, 전도성, 그리고 무해성 등에서의 우수한 특성들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흑연, 다이아몬드에 이은 탄소구조로 나노테크놀로지의 한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나노테크놀로지의 결과로 강력하고 가속적인 사회의 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첫 나노 조립자가 개발될 것이고 자기복제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 이후로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수많은 조립자들이 개발되고 현대적 개념의 노동은 사라질 것이다. 생산품들은 저렴하고 단단하며 풍부해질 것이다. 의약품과 의료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해서 늙지 않는 치료법까지도 개발될 것이다. 우주여행과 식민지 개발도 안전하고 저렴해질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의 생활방식과 태도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과거의 청동기, 철기, 산업혁명 더 나아가 정보혁명이 가져다 준 사회변화들보다 더 근원적인 변화들이 다가올 것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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